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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상식

LIFE 상식(37) 초밥 1인분이 10개인 이유

by 시간킬러 2021. 1. 27.

1. 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인은 덩어리 빵만 먹어야 했었다?

1942년 1월 18일, 미국 농무부의 클라우드 위카드 장관은 이상한 발표를 했다.

'미국의 모든 빵 관련 업체에서는 식빵을 잘라서 팔지 못한다. 덩어리 형태로만 판매한다'는 내용이었다. 무슨 해괴망측한 발표인가 싶은데, 여기서 초점은 빵에 있지 않다. 사실 중요한 것은 빵이 아니라 빵을 자르는 데 사용하는 칼이나 기계, 그리고 빵 포장 용품 등이었다. 즉 전쟁 때문에 군수 물자가 부족해지자 후방에서 물자를 절약하기 위해 이런 정책을 내놓게 된 것이다. 특히 빵을 자르는 기계는 쇠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군수품 공장으로 보내면 무기를 만드는 재료로 적절하게 사용할수 있었던 것이다.

2. 스위스의 퐁뒤는 나치에 저항하기 위해 먹었던 음식이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은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뒤 스위스까지 넘보게 되었다. 하지만 스위스는 독일의 공격을 잘 막아내 1815년 비엔나 회의에서부터 유지한 중립국의 지위를 지켜낼 수가 있었다. 작은 나라인 스위스가 독일 침략을 잘 막아냈던 것은 오로지 국민의 단결된 힘에서 비롯되었다. 스위스는 정규군이 없고, 민병대만 있었다. 

평소에는 생업에 종사하다가 유사시에는 군대로 소집되는 방식으로 운영이 되었는데, 정부가 국민 동원령을 내려 징집 대상자 거의 전부인 40만 병력이 일주일 만에 모였다. 이들이 똘똘 뭉쳐 결사항전을 했다.

그런데 이때 스위스의 전통 음식이었던 퐁뒤가 크게 인기를 끌었다. 오래전 알프스의 목동들의 겨울 추위에 맞서 먹었던 음식이 퐁뒤였다. 포도주를 끓여 치즈를 녹여 딱딱한 빵을 찍어 먹으면서 추위를 버텼던 그 정신으로 나치에 저항하며 위기를 극복하자는 의미였던 것이다.

3. 초밥 10개가 1인분으로 정해진 것은 전쟁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패전국인 일본은 식량난에 빠지게 된다. 이전까지 식민지에서 수탈하던 쌀 등의 식량이 끊기고, 해외에 있던 자국인과 군인들 150만 명이 입국하자, 쌀 가격이 130배나 뛰었다.

1947년 일본의 당시 총리는 식량을 아끼려는 의도로 긴급조치령을 발표해 국민의 외식을 금지했다. 그러자 초밥가게에서는 배급 쌀을 가져온 손님에게만 초밥을 만들어주기 시작했다. 긴급조치령에서 금지한 것은 요식업이었고, 이렇게 하면 위탁가공업에 해당해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이렇게라도 먹고 살려는 초밥 가게를 엄격하게 제재할 수 없어서 조건 하나를 내걸었다. 1인당 쌀 한 홉으로 초밥 10개까지 교환하라는 조건이었다. 이를 계기로 일본의 초밥 가게는 1인분에 초밥 10개를 제공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지금까지 관습처럼 이어지고 있다.

4. 일제강점기에 지옥섬이라고 불리던 곳이 있었다?

2017년 7월 개봉한 영화 '군함도'는 일제강점기의 끔찍한 현실을 고발하는 내용으로 화제가 된 영화였다. 영화의 배경은 일본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에 위치한 하시마섬이다. 19세가 후반 미쓰비시그룹이 이곳에서 탄광 사업을 했고, 1940년대 수많은 조선인이 강제 징용되었다.

하시마섬의 탄광은 지하 1km가 넘는 해저 탄광이었다. 내부는 매우 좁고 기온은 45도를 넘었으며, 수시로 유독가스가 분출되고 해수가 갱내로 쏟아져 들어오는 등 혹독한 환경 탓에 '지옥섬'이라고 불렸다.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은 이곳에서 하루 12시간 동안 채굴 작업에 동원되었으며, 탄광 사고, 영양실조 등으로 사망하거나 바다에 빠져 익사하기도 했다.

1950년대 일본 석탄 업계가 침체되면서 하시마섬의 탄광은 1974년 폐광되었고, 현재는 무인도로 관광지가 되었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하시마섬을 '일본 최초의 콘크리트 아파트가 들어선 일본 근대화의 산물'이라며 하시마 탄광을 포함한 7개 시설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했고, 우리나라와는 '당사자들의 의사에 반한 강제 노동이 있었음'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결정문에 명시하기로 합의를 했다. 하지만 2015년 7월 세계유산 등재가 결정된 직후 일본 정부는 'forced to work'는 강제 노동의 의미가 아니라며 태도를 바꾸어서 논란이 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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