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럽 상류층은 왜 300년 동안이나 가발을 쓰고 다녔을까?
유럽에선 16세기 후반부터 귀족 사이에 가발이 유행했다.
상류층에서 유행이 퍼져 18세기 중반에는 영국에서 성년식 때 머리카락을 자르고 가발을 쓰는 의식까지 치러졌다. 가발이 유행한 이유는 당시에 머리가 큰 사람이 머리도 좋고 남성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병인 매독을 많은 이들이 앓았는데 후유증 중 하나가 탈모여서 이것을 숨기기 위한 목적이기도 했다.
이때에 가발은 염소나 사람의 모발로 만들어졌는데, 안 좋은 냄새가 났다. 그래서 이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 오렌지나 라벤더 향이 나는 헤어 파우더를 사용했었다. 피트 수상은 이 헤어 파우더에 세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누구나 다 가발을 쓰고 다니던 때에 파우더에 세금을 부과하자, 사람들은 해당 지역 법률 사무소에서 면허증과 같은 서류를 1기니씩 주고 사야 했다. 이 덕분에 영국 정부는 연간 1000파운드라는 세금을 거둬들일 수 있었다. 그러다가 가발의 유행이 끝날 무렵엔 세금제도도 같이 폐지되었다.
2. 정부에 항의하던 영국 신사가 중절모를 유행시켰다?
긴 중절모는 영국 신사의 상징이다.
중절모의 정식 이름은 ' 탑 햇'으로 이 모자가 탄생하게 된 것은 아주 우연이었다. 영국 정부는 1784년부터 1811년까지 영국에서 남성의 모자에 세금을 부과했는데, 이를 '모자세'라고 불렀다. 당시 영국에서는 모자가 필수품 중에 하나였다. 신분과 예의 품위 유지 등 이런 것들을 표현하는 물건이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도 꼭 몇 개씩은 가지고 있었다. 부자는 당연히 비싼 모자를 아주 많이 가지고 있었다. 모자세는 부자에게 손쉽게 세금을 거둬들이기 위한 징수제도였다.
모자세가 제정된 영국 남성은 가격이 4실링 이하의 모자에는 3펜스, 4~7실링은 6펜스, 7~12실링의 모자는 1실링의 세금을 내야 했고, 12실링이 넘는 비싼 금액의 모자는 유통업자에게도 따로 돈을 줘야 했다. 이 제도를 따르지 않으면 무거운 가산세를 물리기도 했고, 모자에 붙이는 증지를 위조하려던 자는 사형이란 형벌까지 내리기도 했다.
1797년 런던의 한 양품점 주인은 모자세에 항의하는 취지로 특이한 모자를 쓰고 시내를 활보했다. 사람들은 이 모자를 '번쩍번쩍 빛나는 키가 큰 구조물'이라고 표현했는데, 뜻밖에도 영국 신사들에게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바로 이 모자가 중절모의 시작이 되었다. 모자세는 1811년 폐지가 되었지만, 이때 사랑을 받았던 ' 탑 햇' 은 아직도 영국 신사들에게 인기 있는 상징물로 자리 잡게 되었다.
3. 카디건은 크림전쟁이 탄생시킨 옷이다?
추운 날 얇은 옷 위해 겹쳐서 입기에 좋은 카디건은 크림 전쟁 중 만들어졌다. 크림 전쟁은 러시아 제국과 영구, 프랑스 등 여러 유럽 연합군의 전쟁이다. 이 전쟁에 참전한 영국 장교 가운데는 7대 카디건 백작이란 사람이 있었다.
카디건 백작은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병사들을 돌보는 일을 맡았는데 추운 계절에 부상병을 치료할 때 옷 때문에 번거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다친 이들의 옷을 벗겨서 치료를 한 뒤 다시 옷을 입혀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 끝에 앞에서 단추를 풀어 입고 벗을 수 있는 스웨터를 고안해 낸 것이다. 이를 입은 병사들은 치료받기가 휠 수월해졌고, 이후에 카디건 백작의 '단추로 여미는 스웨터' 에는 그의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카디건은 이 백작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4. 새똥 때문에 페루와 스테인이 전쟁을 벌였다?
새똥 때문이라니,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새똥'은 한때 전쟁의 원인 되기도 했다. 페루에서 '구아노'라고 불리는 새똥은 질소와 인산 등 영양분이 많이 들어 있는 천연비료로 사용되었는데 이것을 가지기 위한 전쟁이 몇 차례 일어났었다.
식물은 광합성을 하려면 땅속의 영양분이 필요하다. 그중 가장 중요한 성분이 질소이다. 식물은 뿌리를 통해서 땅속의 질소를 받아들여서 세포와 조직으로 보내준다. 왜 구아노에는 영양분이 많이 들어 있을까?
이유는 페루 해안 쪽의 바다에는 남극에서 페루 북쪽으로 흐르는 찬 해류가 바다 밑의 영양분들을 뒤집어 올려 플랑크톤이 풍부하다. 플랑크톤이 많으니 물고기도 많고, 이것을 먹이로 하는 새도 많은 것이다. 그렇게 페루 해안에 새들이 많이 몰리고, 해안 절벽에는 새똥이 쌓이고 쌓이게 된 것이다. 이것을 구아노라고 부른다.
19세기 페루의 친차제도는 구아노를 선적하는 주요 거점이었다. 이곳에서 1863년 스페인인 농장주와 페루인 노동자들 간에 분쟁이 벌어졌었다. 스페인은 함대를 보내 구아노의 산지인 친차섬을 점령했다. 결국 페루는 칠레, 에콰도르, 볼리비아와 동맹을 맺고 스페인에 선전포고를 했다. 몇 년간 계속된 싸움에 스페인은 패배하였다. 20세기 들어서는 더 이상 분쟁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는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가 화학비료를 개발하면서 구아노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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