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상식37 LIFE 상식(37) 초밥 1인분이 10개인 이유 1. 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인은 덩어리 빵만 먹어야 했었다? 1942년 1월 18일, 미국 농무부의 클라우드 위카드 장관은 이상한 발표를 했다. '미국의 모든 빵 관련 업체에서는 식빵을 잘라서 팔지 못한다. 덩어리 형태로만 판매한다'는 내용이었다. 무슨 해괴망측한 발표인가 싶은데, 여기서 초점은 빵에 있지 않다. 사실 중요한 것은 빵이 아니라 빵을 자르는 데 사용하는 칼이나 기계, 그리고 빵 포장 용품 등이었다. 즉 전쟁 때문에 군수 물자가 부족해지자 후방에서 물자를 절약하기 위해 이런 정책을 내놓게 된 것이다. 특히 빵을 자르는 기계는 쇠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군수품 공장으로 보내면 무기를 만드는 재료로 적절하게 사용할수 있었던 것이다. 2. 스위스의 퐁뒤는 나치에 저항하기 위해 먹었던 음식이다.. 2021. 1. 27. LIFE 상식 (36) 전설의 알카포네는 세탁소를 운영했었다? 1. 중남미에선 바나나 회사를 '문어'라고 불렀다? 19세기말 중남미의 대표 작물이었던 바나나가 서서히 북미로 알려지게 되었다. 앤드루 프레스턴이라는 상품 바이어는 자메이카에서 들어오는 바나나를 사서 팔아서 이익을 남겼다. 뛰어난 사업가의 수완이 있었던 그는 1885년 다른 바나나 사업가인 베이커와 동업을 하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바나나 회사가 보스턴프루츠사였다. 이 회사는 현재도 여전히 치키타라는 대형 바나나 회사로 그이름을 유지하고 있다. 프레스턴은 바나나 산업에선 혁신적인 사업가로써. 증기선을 바나나를 실어오게 했는데, 카리브해를 통과해서 왔기 때문에 이동 기간을 5일로 단축시켰다. 오는 중에 바나나가 과하게 익게 되는것을 막기 위해서 최초로 냉장 운송도 시도했다. 이렇게 이렇게 여.. 2021. 1. 18. LIFE 상식 (35) 조선 최초의 호텔은 왜 인천에 세워졌을까? 1. 조선인은 처음 커피를 보고 서양인의 한약으로 여겼다? 커피는 일제강점기 시절이었던 1882년에 임오군란 이후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전해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들어온 지 약 100여 년이 되었고, 현재엔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의 눈에 비친 커피는 어땠을까? 조선 말기의 개화사상가이자 정치가였던 유길준은 1890년대 한국인 최초로 미국으로 유학을 갔었다. 보스턴 대학교에 다녔던 유길준은 「서유견문록」에 우리가 숭늉을 마시듯 서양 사람들은 커피를 마신다고 썼다. 기록에 따르면 1910년 종로시장 상인들은 서양인들이 권하는 커피를 마셔 본 뒤 '양탕국'이라고 불렀다. 마치 한약을 달인 것처럼 검고 쓴 탕약을 닮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서양인들이 마시는 거라 '양탕국'이라고 이.. 2021. 1. 18. LIFE 상식 (34) 유럽 상류층은 왜 가발을 쓰고 다녔을까? 1. 유럽 상류층은 왜 300년 동안이나 가발을 쓰고 다녔을까? 유럽에선 16세기 후반부터 귀족 사이에 가발이 유행했다. 상류층에서 유행이 퍼져 18세기 중반에는 영국에서 성년식 때 머리카락을 자르고 가발을 쓰는 의식까지 치러졌다. 가발이 유행한 이유는 당시에 머리가 큰 사람이 머리도 좋고 남성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병인 매독을 많은 이들이 앓았는데 후유증 중 하나가 탈모여서 이것을 숨기기 위한 목적이기도 했다. 이때에 가발은 염소나 사람의 모발로 만들어졌는데, 안 좋은 냄새가 났다. 그래서 이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 오렌지나 라벤더 향이 나는 헤어 파우더를 사용했었다. 피트 수상은 이 헤어 파우더에 세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누구나 다 가발을 쓰고 다니던 때에 파우더에 세금을 부.. 2021. 1. 18. 이전 1 2 3 4 ···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