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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상식

LIFE 상식 (30) 프랑스 혁명 때문에 카망베르 치즈가 알려졌다?

by 시간킬러 2021. 1. 15.

1. 중동에서는 남편이 커피를 끓여주는 게 중요한 결혼 조건이었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오랜 세월 커피를 애용해왔다. 그 이유로 커피의 각성효과가 유력하게 꼽히낟. 커피를 마시면 카페인때문에 잠이 달아난다. 이슬람 사람들은 밤새 기도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럴 때 제격인것이다. 일종의 약처럼 여겼던 사람들은 열매를 씹어서 먹기도 했다. 그러다가 열매를 끓이거나 볶는 등 다양한 가공법을 알게되었고, 점차 발전해 갈아 마시게 되었다. 술이 금지된 세계에서 이것은 아주 훌륭한 기호 식품으로 자리잡았다.

한편 중동의 일부 지역에서는 특이한 혼인 서약이 있었는데, 남편은 아내가 원하는 만큼 커피를 제공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남편이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지 못할 경우엔 아내가 이혼을 요구 할수도 있었다.

 

2. 17세기 이전의 유럽인은 누구나 술고래였다?

오래전 유럽인은 술을 상당히 많이 마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13세기 이후 도시나 시골이나 1인당 하루 포도주를 2~4ℓ를 마셨고, 맥주 소비량은 그보다도 휠씬 많은 수준이었다. 특히 16세기 스웨덴 사람들은 오늘날보다 40배나 많은 맥주를 마셨고, 영국에서는 1인당 하루 3ℓ를 마셨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한국인의 1회 평균 음주량이 1ℓ라고 하니 정말 어마어마한 양이다. 세계의 주당들이 다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연 옛 시절에 유럽인은 술을 왜 그렇게 많이 마셨을까? 사실은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로는 염장음식을 주로 먹어서 갈증을 해소해야 되었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깨끗한 물을 구하기 어려워서 물에 알콜성분인 술로 해독을 해서 마셨던 것이다. 그외에도 산업 혁명 때는 육체적 피로를 잊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휴일에 엄청난 술을 소비했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사람들은 월요일에 제대로 일을 하지도 못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17세기에 들어 유럽에 차, 커피, 초코릿 음료가 조금씩 보급이 되면서 포도주와 맥주를 대체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술 소비량이 줄고 다른 음료를 즐기기 시작했다.

 

3. 중세 수도원이 염전과 양식장까지 갖추고 있었던 까닭은?

중세 유럽의 수도원의 풍경은 경건한 요즘의 분위기와 많이 달랐다. 염전이나 양식장까지 갖춘 시설이 있었으니 말이다. 여기에는 수도사들이 염장 생선을 주로 먹고 살았던 역사적인 배경이 있었다.

1000년경 게르만족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했고, 바이킹족이 세운 러시아도 그리스도교의 교단에 편입이 되었다. 

이렇게 유럽 대부분의 국가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삼게 되었고, 로마 교황청의 위세는 대단해졌다. 당시 교황청이 교인들에게 엄격한 금육과 금식을 요구하면서 유럽인들의 식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금욕 규제는 그리스도교의 교세 확장과 더불어서 점차적으로 엄격해져서 1년의 3분의 1은 육식을 못하게 되었고, 중세 후반에는 무려 215일이나 육식을 금하기까지 했다. 다만 생선은 예외로 허용이 되어 상대적으로 생선의 소비량이 증가한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냉동설비가 없었다. 생선을 저장할 만한 시설이 없어, 소금에 절여 보관하는 '염장'법을 택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염장 생선을 주로 먹었다. 특히 많은 수도자가 같이 사는 수도원은 금욕규제를 더욱 철저히 지켜야 했으므로, 아예 양식장과 염전을 운영해서 해결방안을 세웠던 것이다.

 

4. 프랑스 혁명 때문에 카망베르 치즈가 널리 알려졌다?

중세 유럽의 엄격한 육류 섭취 규제는 치즈를 발전시켰다. 단백질 섭취를 못했기에 대신할 식품을 찾던 사람들은 치즈를 적극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특히 보통 사람들보다 더 음식에 대한 제대가 많았던 수도사들이 열심히 만들었는데, 이때 개발된것이 까망베르 치즈이다. 1789년부터 시작된 프랑스 혁명 때 가톡릭 사제들은 새 공화국에 대해 충성을 서약해야 했었다. 이것을 거부하면 사형을 당하거나, 추방당하기도 했다. 그래서 많은 사제가 시골로 숨어 들기도 했다.

1790년 샤를 장 봉부스트라는 한 사제가 작은 농장에 신세를 지게 되었는데, 그에 대한 보답으로 카망베르 치즈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게 되었다. 이 방법을 전수받은 마리 아델은 후손에게도 알려주었고, 아델의 집안을 통해 카망베르 치즈가 점차로 유명새를 얻기 시작했다. 1863년 나폴레옹 3세에게까지 진상된 카망베르 치즈는 이후 치즈 포장법 등이 발전하게 되자, 유럽 전역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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