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국에서는 쥐가 훔쳐 먹은 것까지 세금으로 징수했다?
중국에서 당나라가 멸망한 907년부터 979년까지 약 70년에 걸쳐 여러나라가 흥망성쇠한 시기와 국가들을 5대10국이라고 한다. 이때 쥐와 새가 훔쳐 먹은 것까지도 세금으로 징수하던 엄청난 일이 벌어졌었다. 바로 이 세금을 작서모세라고 한다.
923년 이존욱은 후량을 멸망시키고 후당을 건국했다. 이는 뛰어난 장수였지만, 국정 운영에는 미숙한 점이 많아, 공겸을 등용해 재무를 담당하도록 했다. 공겸은 돈이 많아야 국력이 강해진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전쟁으로 인해 텅텅빈 국고를 채우기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해서 무리하게 세금을 거두었다. 그중 가장 악랄한 세금의 작서모세이다. 이것은 세금으로 거둔 곡물이나 옷감을 날라 창고에 보관하다가 쥐와 새가 훔쳐 먹는 분량을 계산해 그에 해당하는 만큼을 다시 거둬들이는 세금이다. 이외에도 길을 지나갈 때 거두는 골목세, 술을 빚는데 필요한 누룩에 매긴 누룩세, 등 정말 말도 안되는 세금들이 있었다.
결국 과도한 세금에 분노가 백성들이 민란을 일으켰다. 그래서 이존욱의 양아들인 이사원이 왕으로 새롭게 즉위했는데, 그가 왕이 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공겸의 사형이었다. 또한 백성들을 힘들게 했던 말도 안되는 세금들을 전부 폐지했다.
2. 세계 최초의 지폐는 진짜 돈이 아니라 교환권이었다?
중국 북송시대는 경제가 크게 발전하였다. 베트남 남부에서 쌀이 들어왔고, 이로 인해 인구가 증가했다. 1000년경에 6000만명이었던 인구가 1200년경에는 1억 1500만명으로 증가했다. 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 서쪽 내륙에 있던 수도가 대운하 지대로 옮겨졌고, 운하를 이용해 각종 식량과 석탄 등의 물자가 운반되었다.
이렇게 경제가 발전하면서 쓰촨 지방에서 철전이 제작, 사용되었다. 하지만 철은 너무 무거워 생활에서 사용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금융업자가 철전을 보관하고, 대신 교환권인 교자라는 지폐를 발명해 이것을 주로 사용하였다. 교환권이었으나 실제 돈처럼 사용된 교자는 세계 최초로 발행된 지폐로 인정되고 있다.
3. 칭기스칸이 아시아와 유럽을 정복한 것은 육포 덕분이다?
정말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육포 덕분이란 말인가?
13세기 칭기스칸의 군대는 중국 대륙, 중앙아시아, 러시아, 유럽 일대를 정복하고 대제국을 세웠다. 그 비결은 바로 기동력으로 꼽힌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몽골군 기병 1인이 서너 마리의 말을 이끌고 하루에 최대 200여 ㎞까지 이동했다. 게다가 몽골군은 보급 부대가 필요 없었기 대문에 기동력이 더욱 뛰어났다. 칭기스칸 군대의 명성이 어찌나 자자했던지 당시 유럽에선 우는 아이를 달랠 때 '칭기스칸의 군대가 온다'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보통의 군대는 전투병과 이들을 지원하는 보급 부대로 구성된다. 여기서 보급부대의 역할이 식량을 지원하는 것인데 몽골군은 병사들 스스로가 먹거리를 갖고 다녔다.주로 겨울에 소를 잡아서 살코기를 작게 찢어 말리면 육포가 되는데, 이를 절구에 넣고 절구에 넣어 갈거나, 두들겨서 가루로 만들었다. 이것은 단백질 덩어리로 아주 훌륭한 영양 공급원이 된다. 게다가 들고 다니기 좋고, 보관기간이 2~3년간 가능하다. 육포 가루는 물에 타 먹으면 간단하면서도 아주 훌륭한 식사가 되어 주었다.
4. 강원도 양양의 관광 명소인 하조대, 조선 건국과 관련 있다?
강원도 양양의 명소 중 한 곳인 하조대는 기암절벽에 세워진 정자이다. 근처에는 하조대 해수욕장, 하조대 등대 등 하조대라는 이름을 많이 찾아볼수 있다. 그런데 이 하조대란 말이 많은 사람들이 해돋이와 관련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다른 의미이다. 이는 조선 건국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조선 시대 개국공신인 하륜과 조준의 성인 '하'와 '조'를 딴 정자라서 그렇게 명명했다.
고려가 쇠퇴해져 나라가 시끄러운 시기에 문인이던 하륜과 조준은 정세상 고려가 오래 지탱할 수 없음을 간파하고 벼슬을 버린 뒤 양양 지역에서 때를 기다렸다. 그러다 이성계 일가를 만나 1392년 조선을 건국하는 혁명에 동참하게 되었다. 예상대로 이성계는 조선 최초의 왕이 되었고, 또한 이들은 이성계의 다섯번째 아들인 이방원이 조선의 3대 완인 태종이 되는데도 큰 공을 세웠다.
건국 후에도 두 사람은 나라의 기본을 확립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하륜은 단군 조선부터 삼국 시대까지의 역사를 집대성한 '동국사략'을 공동으로 저술했고, 의정부 영사가 되어 군정을 개편했으며, 좌의정까지 지냈다. 그리고 조준은 토지제도를 확립하고 법전인 '경제육전'을 펴냈으며, 좌정승과 영의정 부사를 지냈다. 이 같은 업적을 기려서 정종 때 이들은 은거하던 시절에 머물렀던 장소에 정자를 세우고 '하조대'라고 이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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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상식으로 두뇌의 숨은 힘을 깨워라.1분 생활상식'.별글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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