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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상식

LIFE 상식 (29) 신대륙 발견자는 콜럼버스인데, 왜 다른 이름을 붙였을까?

by 시간킬러 2021. 1. 15.

1. 조선 시대부터 버터를 생산했다?

우리 조상은 고려 시대부터 ' 수유 '라고 하는 버터를 만들었었다. 다만 굉장히 귀해서 오로지 최고의 지배계층만이 누를 수 있었다. 그때의 버터는 초원의 유목민들이 만드는 형태였고, 주로 왕이나 왕족들의 약으로 사용되었다. 때론 공로가 많은 늙은 신하가 병이 들었을 때 왕이 하사하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수유는 평안도와 황해도등의 '수유치'라고 불리는 일부 마을에서만 만들어졌는데, 이곳 주민의 대부분이 몽골인의 후손이었다. 이들은 해마다 일정량의 수유를 왕에게 바쳤고, 대신 군역을 면제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원래 이곳에 속한 사람이 아닌데 신분을 속이고 군역을 피하려고 하는 자들이 늘어난것이다. 이러다 보니 한 가구에 남자만 21명이 사는 사례가 적발되기도 하는 등 당시에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2. 조선 시대에는 화장실 흙을 채취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병사들이 마음대로 백성의 집에 들어와 화장실 바닥이나 가마 아래, 담벼락, 구들장 밑에 흙을 긁어갔다는 이야기가 적혀있다. 이 병사들은 당시 화약을 제조하는 염초장의 부하였다. 사실 민간뿐 아니라 궁궐의 화장실, 담벼락도 주기적으로 이들에게 개방을 했다. 이는 모두 당시 아주 귀했던 염초를 얻기 위함이었다. 

이것은 조선 시대의 중요한 무기인 화약의 주원료였던 질산칼륨이다. 그때는 흙에서 이것을 얻었는데 특히 화장실 바닥에는 질산암모늄이 형성돼 흙에 섞여 있기에 염초장에게는 매우 중요한 장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흙을 한 무더기는 모아야 겨우 밥그릇 하나 정도 되는 염초를 얻을 수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흑색화약 제조에 필요한 세가지 요소 가운데 황과 숯은 쉽게 구할 수 있었으나, 가장 중요한 질산칼륨은 제조가 어려웠다. 그나마 이것을 흙에서 얻는 취토법도 고려 말 최무선 장군이 원나라에서 힘들게 들여온 것이었다. 중국은 명나라 때 질산칼륨 제조법이 개발되었으나, 국가 기밀로 취급하여 절대 유출하지 않았다.

 

3. 신대륙를 발견한 건 콜럼버스인데, 왜 다른 이름이 붙여졌을까?

1492년 10월 12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 콜럼버스가 첫발을 디딘 곳은 지금의 바하마 제도다. 

미국 플로리다 반도 남동쪽에서 히스파니올라섬에 이르기까지 약 800km에 걸친 약 700개의 섬과 2000여 개의 산호초로 이루어진 곳이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도착한 것은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의 후원을 받아 출발한 지 70여 일 만이었다. 콜럼버스는 원래 칸이 다스리는 원나라로 가려고 했고, 해류 탓에 원나라의 남쪽에 있는 인도에 도착했다고 착각을 했었다. 그래서 콜럼버스는 신대륙에 만남 원주인을 '인디언'이라고 불렀다. 

나중에 콜럼버스가 오해했다는 게 밝혀졌으나, 인디언이라는 명칭은 계속 사용하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콜럼버스를 기리며 그가 찾아낸 카리브해의 섬들은 '서쪽의 인도'라는 의미로 '서인도제도'라고 이름 지었다.

그런데 10년 뒤 이탈리아의 탐험가인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1502년 남미를 탐험했다. 그는 남미가 인도가 아니고 신대륙이라는 내용을 담아 여행 일지 「신대륙」을 출판했다. 이것으로 신대륙의 존재가 인정이 되었고, 신대륙에는 아메리코 베스푸치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로 불리게 되었다. 신대륙은 발견한 건 콜럼버스인데 다른 이름이 붙여진 이유가 왠지 좀 안타깝다.

 

4. 모카는 원래 예멘의 지명이다?

'커피'라는 단어는 원래 커피의 원산지인 에티오피아 '카파'에서 유래되었다. 커피의 원산지는 에티오피아로 대략 9세기부터 이 지역의 고지대에서 재배되고 있었다. 15세기 중반에 쓰인 예멘의 수피교도들의 기록에서 커피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이곳에는 경작하고 열매를 볶아서 음료수를 만드는 관습이 있었다. 이후 예멘과 메카와 메디나, 카이로로 급속하게 퍼진 뒤 오스만튀르크, 다시 인도로 전해졌다. 당시에 메카, 메디나, 이집트, 터키 등 이슬람 국가에서 커피 주문량이 얼마나 많았는지 원래 예멘의 한 항구 이름에 불과했던 '모카'는 지금까지 커피를 말할 때 대표적인 이름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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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상식으로 두뇌의 숨은 힘을 깨워라. 1분 생활상식'.별글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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